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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맛을 읽는 밤 The night reading taste,s>, reading performance, 대인시장 길포차, 2017

11/04/2017

<맛을 읽는 밤>

안녕하세요, 맛과 길에 대한 이야기, 맛을 읽는 밤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도서관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맛에 대한 좋은 글을 읽는 곳으로 식당 만한 좋은 도서관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좋은 곳에서 맛과 길에 대한 몇가지 글들을 읽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포차’에 다 같이 이렇게 앉아 있습니다.
포차는 다 아시겠지만, 포장마차의 줄임말로, 한국에서 천막을 친 마차 모양의 식당이나 다양한 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이고, 밤에 술이나 먹을 거리를 간단하게 먹는 서민적인 식당의 형태입니다. 실내 포차는 대중적이라서 서민에서 중산층까지 모두 흡수할 수 있고, 고객층이 넓고 가격도 저렴해 불황에도 강한 업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포장마차는 급속한 경제성장기를 맞았던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길거리 포장마차는 급속하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2003년께 길거리 포장마차 시장의 공백을 메우며 나타난 것이 ‘퓨전 포차’ 인데요, 이는 길거리 포장마차의 느낌을 실내로 옮기고 인테리어나 메뉴를 업그레이드한 것입니다.
다양한 메뉴로 인기를 끌었던 퓨전 포차는 오히려 많은 메뉴가 단점으로 작용, 2008년 정도 부터는 인기가 시들해졌습니다. 많은 메뉴를 다루다 보니 냉동 식재료를 너무 많이 사용해 맛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이후 나타난 새로운 실내 포차 트렌드는 ‘복고풍 실내 포장마차’입니다. 복고풍 실내 포차의 매장 콘셉트는 1970~1980년대 주점 분위기를 내는 것입니다. 메뉴도 옛날 전통시장에서 팔던 ‘추억의 통닭’을 비롯해 ‘도시락’, ‘닭발’ 같은 고전 메뉴가 주력 상품입니다.

여기서 닭발이 고전 메뉴라고 언급되었는데요,
닭발은 닭의 발이죠.
맵게 양념해서 먹는 대표적인 술안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먹으려고 해도 살이 별로 없어서 아쉽다면 아쉽습니다. 게다가 닭은 다지류가 아니라 마리당 닭발이 2개 밖에 생산이 안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 본격적인 양계 체계가 잡히기 전엔 그나마 많이 먹지도 못했습니다. 
오독오독 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뼈를 발라 먹기가 힘듭니다.  요즘 보이는 뼈 없는 닭발은 공장에서 아주머니들이 칼로 살만 발라내는 방식입니다. 이빨로 벗겨 발라낸다는 둥 괴담이 돌곤 했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의 뼈 없는 닭발은 위생적인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비닐 장갑과 위생복을 입고 뼈를 발라낸다 하니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합니다. 한편, 몇몇 포장마차에서 매운 양념에 삶은 매운 닭발을 출시하는 등, 뼈 있는 닭발도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뼈를 발라낸 닭발을 일부가 젤라틴화할 때까지 푹 삶아 편육처럼 짓눌러 식혀 굳힌 다음 썰어 파는 경우도 있습니다. 닭발 특유의 모양을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좋습니다.

( 닭발을 먹는 나라들이 꽤 많은데요,
중국인들은 닭발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딤섬 메뉴에 양념소스에 삶은 닭발 요리가 있는 건 기본에, 각 지역마다 무궁무진한 베리에이션을 자랑하며, 식초에 절여서 먹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중국인들이 텔레비전보면서 즐겨 먹는 간식 조사에서 1위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훨씬 크고 살이 많은 미국산 닭발 때문에 중국산 닭발이 안 팔리자 판매업자들이 정부에 항의, 마침 미국과의 무역분쟁이 벌어지자 2011년에 중국 정부가 미국산 닭발을 표적으로 삼아 100%의 반덤핑 관세를 때려버렸다고 합니다. 미국 수출상들은 원래 쓰레기로 버리던 걸 먹고 싶대서 팔아줬는데 무슨 반덤핑 관세냐고 반발했고, WTO에 제소하여 맞섰습니다. 결국 2013년에 부당 관세라는 판결이 내려 중국 정부가 패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주로 국물용으로 사용합니다. 돼지 뼈와 닭발을 함께 고아서 만든 국물을 기본으로 쓰는 라면 집이 많습니다. 기본 적으로 향이 강하고 비린내가 어느 정도 나며 마늘 같은 향신료도 많이 넣기 때문에, 일본 요리 치고는 풍미가 독특한 편이기 때문에 남자의 요리나 서민 요리 같은 느낌으로 다뤄진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도 가게에 공급하는 싸구려 냉면 육수는 닭발과 닭대가리를 고은 국물을 쓰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잘 처리를 했을지 어떨지 기분이 좀 찝찝할수도 있지만 결코 안 좋은 재료는 아닙니다. 국내에서는 위에 언급된 대로 매운 양념들을 곁들여 먹지만 간혹 잘 튀겨서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닭머리만으로 육수를 낸 닭고기 국물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음식입니다. 
아시아에서 대중적인 닭발이 의외로 러시아에서도 먹습니다. 그런데 이 배경이 구소련 붕괴 직전 식량난으로 미국에 식량지원을 요청하는데, 그 때 미국에서 폐기되던 대량의 닭발들을 지원하여 그 때 정착된 음식 문화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젤라틴으로 굳히는 요리와 스프인 보르시에 넣어 먹기도 합니다. 하필 닭발을 준 이유는 미국산 닭의 머리는 동남아에 수출되고, 다리랑 날개는 한국으로 수출되고, 닭가슴살은 미국 내에서 팔렸지만 위의 중국 부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닭발은 그냥 폐기하고 있었으므로 조달하는 비용이 덜 들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이며 주먹밥과 함께 먹으면 맛있는 음식입니다.
최근 인터넷 디시위키 사이트에 닭발 문서에 뜬금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이 올려져 있다고 합니다.

닭발과 주먹밥,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이 조합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닭발과 주먹밥의 조합을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나요?
다들 아시다시피, 주먹밥은 밥을 뭉쳐놓은 형태의 음식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먹는 음식으로, 양국의 식문화가 자포니카 쌀로 지은 밥을 먹는다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야외훈련을 할때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추진 식사를 제대로 지급할 수 없는 대형 훈련, 행군, 진지점령시에 지급된다고 합니다.
만들기 쉽고 간단한 음식이다보니 주먹밥의 자세한 역사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일본 쪽의 자료로는 이미 야요이 시대(B.C 300~A.D 300) 중순경의 유적 발굴로 인해 그 때부터 주먹밥을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불경에는 승려가 먹는 음식으로 단식(摶食)[1]이라는 게 나오는데, 이것은 인간이 먹는 물질과 형상으로 된 음식이란 의미 외에 손으로 뭉쳐 먹는 밥, 즉 주먹밥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기원전부터 존재했으니 의외로 역사가 엄청나게 긴 음식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당시의 상황을 유추해 보면 국내에서도 먹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 주먹밥은 일본의 오니기리와 사이즈가 다릅니다. 적은 양의 밥을 뭉쳐서 서너개씩 가지고 다녔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주먹밥은 두 손으로 들고 먹어야 했을 만큼 큰 사이즈로 하나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이것은 원래 밥을 담던 그릇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일본은 밥을 공기에 담아 먹었지만 한국은 공기의 몇 배가 되는 사발에 담아 먹었으니 주먹밥도 사이즈에서 차이가 날 만도 합니다.

한편 현대 한국에서 주먹밥은 50대에서 80대, 즉 6.25 전쟁을 겪었거나 전후에 비교적 일찍 태어난 세대에게는 전쟁이나 가난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전쟁 중이나 전후 경제사정이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의 상황을 몸소 겪은 세대이기 때문에 당시에 먹던 음식에 힘들었던 상황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는 것입니다. 전시에는 전투식량 뿐 아니라 일반인이 먹은 음식도 주로 주먹밥이었다고 하며, 그나마 없어서 주먹밥 하나로 식구들이 나눠먹는 상황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고난의 행군 당시 '줴기밥(주먹밥)'과 소금국으로 끼니를 때우며 쪽잠을 자면서 지냈다고 선전한다고 합니다.

광주와 주먹밥도 뗄레야 뗄 수 없습니다. 5.18주먹밥은 너무 유명한데요, 새 시대를 맞은 대통령의 기념사에"5월 광주의 주먹밥과 헌혈은 우리의 자존의 역사"라고 언급되며,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민주화 운동 당시 아주머니들이 길거리에 양동이와 솥단지를 들고 나와 밥에 소금물만 적신 주먹밥을 굶주린 시민들께 나눠 주셨다고 합니다. 당시 회상들을 보면, 먹을 거리와 주먹밥, 헌혈을 위한 피가 넘쳐났다고 합니다. 적십자에서도 회상하는 바에 따르면 헌혈을 하러 오는 시민들로 인해 피가 남아 돌 정도였다고 하죠. 이때는 LA같은 해외에서도 교민들이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며 상징적으로 광주로 피 보내기 운동도 추진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언론들은 다 차단되어 국내 국민들은 잘 알지 못했고, 오히려 해외에서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 해외에서 피 보내기 운동은 실질적으로 여러가지 이유로 실행되지 못했지만,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해외동포들의 상징적인 에너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에너지, 전투 식량으로서의 피, 그것이 광주의 주먹밥입니다. 당시,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어주시던 살아있는 산 증인, 유명한 아주머니 한 분이 대인시장 벽화 골목에 그려져 있고요, 지금도 시장 곳곳을 누비고 다니시며, 과일을 팔고 계십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역사적인 대인시장 안의 ‘길포차’에 함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길을 가던 중에 여기서 이렇게 잠시 ‘길포차’에서 만난 것입니다. 길에 대해서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영화감독 중에 페데리코 펠리니라는 감독이 있습니다. 1945년에 ‘라 스트라다’ 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요, ‘길’이라는 뜻입니다. 이 영화에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배우 줄리에타 마시나가 젤 소미나라는 역할로 나옵니다. 그녀는 이 ‘길’에서 약간 모자란 백치이지만 너무나 순수한 영혼으로 등장합니다. 유랑하는 차력사의 노예처럼 정처없이 이곳 저곳을 끌려다니며 학대 받는 여인이지만 그에 대한 사랑을 놓치 않습니다.

‘난 아무에게도 쓸모가 없나봐요’ ‘사는 게 지겹고, 왜 태어났는 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녀를 멀리서 사랑하게 된 나자레노는 말해줍니다.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어딘가에 쓸모가 있어. 길가의 돌멩이 조차 어딘가에 쓸모가 있어. 이게 소용이 없다면 만사가 다 소용이 없어.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어.’ ‘너도 마찬가지야, 뭔가 쓸모가 있을 거야,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있더라도.’
이 거리의 여인 젤 소미나는 자신을 학대하는 참파노마저 사랑합니다. 그러나 참파노는 그녀를 무참히 거리에 버립니다. 세월이 많은 흐른 후에 여전히 거리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참파노는 그녀가 서서히 미쳐 죽어갔다는 이야기를 소문으로 듣고 회환과 고통의 눈물을 흘리지만 이미 시간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여기서 갑자기 우리는 가장 불행했던 여인 젤 소미나보다 참파노가 더욱 불행한 사람이라는 진실을 목도하게 됩니다. 죽음이나 희생이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사그라짐이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 곁에 머물렀던 사랑이나 가치에 대해 무지하여 잃어버린 후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맞이하게 된 그것이 아마 가장 참혹한 비극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사람도 없습니다. 건강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함께 우주의 시간과 공간이 있습니다.
무엇이 흘러갑니다.
당신의 공간에서 무엇이 흘러갑니다.
그 흘러가는 시간의 입자들을 가만히 느껴보면 당신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하나 남아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요.
그것은 아마 용기, 세상이 용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용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당신에게 힘입니다.
그것은 결국 당신의 모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사실 당신의 가장 값진 것입니다.

우리를 감싸던 뿌연 안개가 걷히고 모든 것의 실체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비로소 우리는 밝은 눈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래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길입니다.
새로운 길, 입니다.

맛과 길에 대해 저는 앞으로도 더욱 알고 싶습니다. 각자가 서로의 새로운 길들을 떠나기 전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잠시 함께 했던 밤이었습니다.
그 소중한 첫번째 기회를 만들어 준 계기가 여기 ‘길포차’입니다. 맛과 길에 대한 조합도 길포차가 섭외가 되고 난 후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길포차에는 앞서 얘기했던 닭발 뿐 만 아니라, 사장님이 자부심으로 내어 놓으시는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등 다양한 메뉴가 있습니다. 메뉴판도 글씨르 쓰시는 사장님 지인 분이 써주셨고요, 저기 고비사막 사진은 사장님 내외 분이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하시네요. 술이나 밥 만이 아니라, 지나가다 그냥 쉬어 가기도 하고, 커피 한잔 하고 가기도 하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녁을 드실 시간이 되었는데요. 이 ‘길포차’가 앞으로도 우리가 고되이 왔다 갔다 하는 길에 언제나 들를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맛을 읽는 밤’에 오신 분들께 감사드리고요,
모두들 맛있는 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티스트 ‘연정’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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