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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ant 02]구조의 확장과 내파- 수행적 불화,김연정

03/25/2015

N`Avant 02 구조영화 특집

 

 

구조의 확장과 내파- 수행적 불화- 김연정

 

 

 

     19세기 당시 지배적이었던 회화라는 이미지 재현 매체의 내부적 변동과 위기 속에서, 회화가 또 다른 한편으로 기술적인 추구로 성취해야만 했던 실제에 대한 미메시스를, 고된 추구 없이도 완벽하게 구현하는 사진이라는 뉴 미디어가 출현했을 때, 그리고 그 새로운 매체에 대한 가능성으로 흥분과 실험이 태동하고 있을 때, 초창기 근대 사진의 선구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는 카메라의 특정성을 강조한 사진 분리파를 주창했음에도 불구하고 회화에서의 풍경화나 초상화 같은 전통적인 장르의 미학 속으로 다시 사진을 밀어 넣었다. 


예술사에서 한 흐름의 급격한 변동이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요구들이 터져 나올 때, 자신의 자리를 온전히 점유하며 태어나는 신생아들은 사실 별로 없으며, 처음부터 부모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해체와 파괴를 탄생의 요람으로 삼았던 '다다 Dadaism' 정도가 태생부터 존재감을 각인시킨 정도였으며, 그 영향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60년대의 '플럭서스 Fluxus' 도 그 당시의 관습과 현실에 대한 해체적 실험으로 전위의 이름을 얻었지만 '다다' 라는 역사적 맥락에 힘입는 것이었다. 사진이 회화보다 늦게 도달한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숙과 내파기에 있었던 회화에서의 여러 문제의식, 새로운 흐름들, 큐비즘, 미래파, 구성주의 등의 새로운 시각은, 실제의 미메시스라는 테크닉적으로는 단순한 성취와 함께 사진이라는 매체에 동시에 당도하였다. 
 

사진이라는 신생아가 성숙하고 급진적인 실험들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회화의 전통 속으로 사진의 가능성을 퇴보시켰던 스티글리츠의 힘입은 바가 크다. 초창기 사진의 기술적인 측면 때문에 장시간 동안의 촬영, 인화를 통해서만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고, 이런 긴 노출시간들은 완전 새로운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일신한 것이 아니라, 서정적인 풍경화가 그려내었던 순수예술의 아우라를 빛으로 구현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스티글리츠가 얻은 것은 사진의 예술적 위치를 획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60, 70년대의 급격한 정치적 변동과 더불어 새로운 영화를 위한 요구들이 터져 나왔을 때,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이나 누벨바그 등에서의 핵심은 통합적인 다이제시스에 대한 소격화와 영화적 요소들을 분리하고 전면화함으로써 영화의 과정자체를 드러내는 전략이었다.  구조영화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특징 또한 내러티브의 파괴와 영화적 요소들의 분리를 전면화하는 것을 통해 영화적 과정자체, 매체의 내재적 언어를 물질적 감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 둘의 유물론적 전제와 기호학적인 당연한 영향의 환기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 둘의 역사적 실행의 명백한 차이 속에서, 그 '구조들'의 모호함은,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구분에 대한 논의와 그 논의들을 모호하게 오가는 오류적 실행 속에 있어 보인다.  


폴 윌먼 Paul Willemen에 따르면, 나중에는 둘 다 중산층 인텔리 예술가들에 의해 확고해졌지만, 아방가르드는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부분으로서의 예술적 실천이었고, 노동 계급의 정치학을 형성하는 과정의 부분으로 출현한 것으로 예술적인 것과 정치적인 급진성 사이의 상징적인 관계 같은 것이었다. 반면, 모더니즘은 지속적인 갱신과 혁신에 의해 보존되는 질의 수준을 축적하는 것으로서 변화에 반대하고 아방가르드 실천에 대항하는 순응자의 현신이다. 68의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기 위하여, 문화적 좌파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대한 비판적 분석으로 눈을 돌리는데, 새로 대두되었던 좌파의 재해석 문제와 페미니즘의 만남은 유럽과 미국의 70년대에 주체성과 기억의 개념에 초점을 돌리게 했고 , 아방가르드의 재시급성을 맞은 것이었다.  이러한 논의의 전제는 아방가르드가 정치적 급진성과 매체적 급진성을 담보하면서 자본과 시스템에서 자유로운 개인의 주체적 시지각들을 구조화할 수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폭력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관객의 지식과 역사적 경험을 호명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키 하트필드 Jackie Hatfield는 '내러티브성을 둘러싼 아방가르드 논쟁의 리뷰를 하는 몇 가지 이유' 라는 부제가 붙은 "확장영화와 내러티브 Expanded cinema and Narrative"라는 글에서 아방가르드와 내러티브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불확실한데, 아방가르드가 주로 내러티브에 대항하는 것이라는 편견은 내러티브의 연속성의 요구로부터 해방되는 특징을 더욱 닫게 해석한 것이며, 이러한 일조의 책임을 피터 기달을 비롯한 영국 쪽 구조영화에 돌리고 있다.
피터 기달 Peter Gidal의 '구조적 유물론자 영화 Structural Materialist film(1989)', 한스 리히터 Hans Richter의 '영화의 투쟁 The struggle for film (1986)', 말콤 르 그리스 Malcolm Le Grice의  '추상영화와 그 너머 Abstractive film and beyond (1977)'와 같은 텍스트들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사실 60,70년대의 구조 영화들을 반-환영적인 모더니즘의 방향으로 포지션시켰다. 
그러나 구조영화 내에서 퍼포먼스를 비롯한 멀티 프로젝션의 변주들과 내러티브에 대한 다양한 접근은 반-내러티브적, 반-환영적인 것 이었다기보다 내러티브를 가지고 놀며 때로는 한시적인 리얼리티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비디오 아트 또한 필름과 다르다는 그린버그식의 매체 특정성을 앞세웠는데, 이는 아방가르드가 다시 겨우 만들어 놓고 있는 정치적 급진성과 삶과 예술의 통합의 문을 다시 닫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구조영화 내부에서의 다양한 움직임과 더불어 데이빗 커티스, 말콤 르 그리스, 피터 월렌 등은 70년대 역사적 컨텍스트 혹은 정치적 아웃컴으로써 매체의 구분을 엮는 노력으로 필름을 순수 예술 내에 위치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펀드를 가지고 오게 된다. 이는 스티글리츠가 매체의 특정성을 강조하고 그 가능성을 미학적인 것으로 한정시키면서 그러나 동시에 기존 예술과의 안정적인 접점을 만들고, 그 특정성에 대한 강조로 생존을 확립한 것처럼, 구조영화가 스스로의 한정적인 정의를 통해 그 가능성을 후퇴시켰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이후의 지속적 생존은 그 후퇴에 힘입은 바가 크다.  


당시 영화라는 매체자체의 내적 언어를 다시 사유하고자 하며 반환영적 모더니즘의 옷을 걸치고 있던 누벨바그 같은 동시적 다른 흐름들이 응시의 시선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내러티브나 집단적 기억의 힘으로 그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간다고 한다면, 구조영화는 매체 내적 언어의 더욱 강화된 강조, 유물론적 입장을 더욱 끌어가는 것이라는 이론상의 급진성에도 불구하고 구조 스스로를 페티쉬의 상태까지 끌고 감으로써 경험의 축들을 닫아버리고 역설적으로 반환영적 모더니즘의 질적 축적을 강화하는 것이다. 
구조 영화 자체가 구조와 물질성 등 광범위하고 모호하며 일반화된 그리고 동시대 다른 흐름과 다른 맥락에서 수행됨에도 불구하고 같은 전략적 무기로 사용하던 그러한 규정 대신, 구조영화의 구체적인 미학은, 오히려 그 특정 구조들이 만들어 내는 수행력, 특정하게 패턴화 되어 있는 구조들의  운동력, 그 운동력이 발생시키는 다른 환영과 리얼리티들에 있다.
요소들을 미세한 구분과 전시로 더욱 강조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물성을 넘어서 페티시화된다. 물성에 대한 강조라는 원래의 가치가 외부적인 어떤 가치로 전치되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는 물성의 위기를 순간화하는 징후들이 있다. 

그들의 매체적 강조나 구조의 강조라는 것은, 순수 미술 내의 이슈와의 접점에 가까운 것인가 아닌가, 아방가르드의 전복적 선로에서 이탈하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가치적 맥락을 쫓을 수 있는 단서라기 보다는 필름이라는 매체의 태생적 요소들과 언어들을 물질화한다는 추구가 어떤 접점 끝에서 무너지며, 혹은 의미 없는 성취가 되며 혹은 가장 전복적인 가치로써 위기를 순간화 하는 시야를 열어놓는가에 대한 단서들일 것이다.  

롤랑 바르트 또한 페티시즘이 이성적인 교환관계를 방해하는 하나의 방법론이 된다고 한바 있는데, 구조적 물성의 강조가 진실로 현존적인 물성화가 될 수 없고, 이미지는 여전히 환영을 창조하며, 물질적 요소로 구분 붙여진 요소들이 또 하나의 통합적 집합으로 다른 수행력을 행사하듯이, 구조영화의 실험은 요소들의 접합들이 어떻게 이성적이지 않은 교환관계들로 맺어지는 가에 관한 것이다. 
라캉은 구조영화에서의 반복되는 시간성, 그 속에서 다양화되고 바뀌는 것은 의미의 소외일 뿐이라고 했지만, 그 말은 역설적으로 구조영화가 이성적이지 않은 교환관계들로 스스로의 구조를 소격화 하면서 그 부정이 아니라 하나의 징후를 드러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건져 올린다. 끝없는 반복의 끝은 그 의미의 탈락이지만, 그 상실은 스스로를 천천히 내파시키면서 후경으로 있던 파편들을 들어 올린다. 
구조 영화는 당시 영화가 동시적으로 발생시키는 여러 가지 상황들, 내러티브, 리얼리티, 관객 등과 연동하는 흐름에 당도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간 구조 영화가 질적으로 축적했던 모더니즘적 가치, 변화보다 미학적 수준의 공고에 혼신을 기울이는 형식적 엄격함을 스스로의 언어로 내파함으로써, 유령처럼 산재된 경험이나 인간의 신체적 흔적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아담스 시트니에게 구조영화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한마디로 '그것은 마이클 스노우의 '파장 Wavelength(1967)' 이라고 했다는 그 마이클 스노우는 정작 '파장' 의 핵심은 '시간을 만드는 것' 이라는 순수 예술에서 기원한  미니멀 아티스트다운 대답을 하였다. 

대신 나는 '파장' 에 대한 호의적 분석 중에서 다나 폴란 Dana Polan의 언급이 그 영화의  가치 있는 맥락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파장'에 급진성을 더한 그녀의 해석에 따르면, '파장'은 영화적 사건/ 비 영화적 사건을 포함하여, 관객의 경험에 환영과 동시에 반-환영을 제공하는데 파장을 통한 사진이라는 것은 결국 사진일 뿐이라는 것이다. '왜 삶은 필름으로 들어가나'라는 스노우에게 주어진 질문에, 많은 요소들이 중립적인 요소로써 생리학적 요소로 전환되는 감각이 있는데, 그는 중립적인 지대로써의 환경이 아니라 가치로써의 환경을 얘기하면서, 환경의 경험에 대한 소격화를 기입한다는 것이다. 범죄적 공간의 느낌. 비지니스가 흥했다가 부도를 맞은 듯한 공간에 대한 직설적인 기록 등, 파장은 다양한 사건들이 구조적 형태를 칩입하고, 구조 영화가 억눌려왔던 것이 귀환한 것을 형상화한다. 
그것은 모든 필름이 현재화하고 있는 가치를 외연화한다. 상대적인 자동성보다 불가능성을 반복하는 가치, 경험으로 향한 예술의 피할 수 없는 연결을 세울 메타적 언급을 항상 허용하는 가치가 있다. 
 스노우 자신은 물질적 시간에 대한 유일한 관심과 그 시간을 구조화하는 것에 관한 관심을 강조하지만, 감각과 이미지와 사운드가 허락하는 상상은 경험과 기억을 소환할 수 밖에 없다. 매체를 매체로 되돌리는 일은 매체의 특정성을 미학화 하는 것이나 단순한 구조적 물성을 만드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구분으로 인해 매체적 진실과 경험적 투사와의 만남을 더욱 열린 형태로 풀어 젖혀 놓는 가능성을 만드는 곳에 있다. 

미적 축적으로 향하는 내재화된 기호들은 동일화 트러블을 만들 수 밖에 없고 구조라는 체계는 불연속적으로 내파된다. 구조는 하나의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퍼포먼스, 실행이다. 구조의 내파 속에서 내부 요소들의 부대끼는 불화의 운동성을 수행적인 전략으로 바꾸어 놓는 확장영화는 과정에서 배제되고 억압되었던 경험과 주체성의 기억들을 다시 구조적으로 불러오는 작업을 한다. 

오스트리아의 액션 필름 action film은 오스트리아 필름 메이커 조합으로 협상된 빈의 혁명적 아니키 그룹에 의한 것으로 그 전초는 피터 쿠벨카 Peter Kubelka와 커트 크렌 Kurt Kren이었다. 쿠벨카는 구조영화의 순수 운동성을 그 자체의 페티쉬가 아니라, 급진적인 이슈와 현실의 촉각적인 기운으로 바꾸어 놓는다. 개념미술과 미니멀 아트라는 지적인 무기의 마이클 스노우 같은 작가와는 태생부터 달리하는 듯한 커트 크렌의 터프하고 질퍽한 삶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는 구조 영화는 오스트리아의 액션 필름을 악명적으로 대표하는 오토 뮐 Otto Muehl 작업의 기본이었다. 

오토 뮐은 인간의 신체를 철저하게 물질로 다루면서 그 극한은 어디인가를 실험한다. 이는 필름을 위한 물질이 되는 신체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의 퍼포먼스였다. 나체의 참여자 전원이 집단적인 의식을 거쳐 영화와 영화 밖 사건을 오고가는 집단적 카메라의 촬영행위는, 동물적 단계에서 원초적인 신체의 물질성을 샤머니즘적으로 혹은 전투 그 자체를 연상시키는 집단적인 최면상태로 끌고 가는데 이러한 영화적/반영화적 행위와 퍼포먼스적인 사건들은 관객을 공포화하거나 기쁘게 하는 극단의 감정을 추구하며 궁극적인 '대면의 장치'로서 영화를 마주하게 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이 빈 행동주의자들의 해체적 방법론은 1960년대 오스트리아 사회의 보수주의에 대한 저항의 전략이었는데, 이들의 고문에 가까운 신체적 학대와 성에 대한 권력적인 실행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도우스킨 Stephen Dwoskin이 지적한 '과잉'의 효과가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 크렌과 다른 빈 행동주의자들은 부르조아적 요소들에 다다적 해체적 대면으로 마주하고자 한다. 다다, 초현실주의, 플럭서스적인 방법들. 도전에 대한 이러한 욕망은 구조영화 내에 본래 내재하고 있다. 관객들을 오버로드시키는 시각적, 청각적 것들을 구현하는 많은 요소들을 외재화 하는 구조영화의 속성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작업은 여러 장치와 언어들을 외재화하는 시도들 속에 그 가치가 있다기 보다는 상호적인 환경 안에서의 과잉적인 그 수행성에 있었던 것이다. 

 

 

[Otto Muel, 오토 뮐, 베를린 현대 미술관]


1968년 자신의 가슴 부위에 극장환경을 환기시키는 상자를 입고 거리로 나가 관객들의 손을 그 극장 안으로 초대하는 센세이셔널하고 센슈얼한 '촉각 영화 Touch Cinema' 를 만들었던 오스트리아 필름메이커 조합의 일원이자 역시 빈 행동주의파 중의 한 사람이었던 발리 엑스포트 Valie Export는 오토 뮐의 젠더와 권력에 대한 무감각에 비판적이었다.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과 기억 속에 있는 역사를 끌어올리는 그녀의 작업은 퍼포먼스나 사진, 설치 등과의 다매체적 결합으로 더욱 힘을 얻었다. 2003년 '확장된 현실로써의 확장 영화' 라는 주제로 런던에서 했던 강의에서 그녀는, 학생시절 이미 큐비즘과 미래파 등에 영향 받아 공간으로 예술적 표현을 확장하는 형태에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시간적 요소를 고려해 빛과 움직임, 이미지를 넘어서 보는 관습을 교란하는 과정 사이에 있는 어떤 인터 액션으로 자연스럽게 관심 이동을 해갔는데, 이러한 영향은 그녀를 이미지 행동주의자가 되게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지 행동주의자로써의 그녀가 규정하는 확장영화는 1945년 유럽 문화의 파산과 이후 25년의 정치적 암흑기를 넘어 도달한 당시 정치적 상황의 맥락 안에서 꼭 보여져야 하는 것으로, 지배적 현실의 해체를 위해 영화 현상을 형식적인 요소들로 해체하고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합치는 것이었다. 
'모든 요소들의 집합적 합체의 작동은 부분적으로 실재의 새로운 기호들을 설치하기 위해 실체에 의해 대체된다.' 라는 모토는 일방적인 영화의 요소들과 수용환경을 거부하고자 하는 영화적 수행의 지시체로써, 냄새, 맛, 터치, 소리 등의 모든 감각을 활성화시키는 모든 시도들을 언급하며, 1960년대 중반 확장 예술의 광범위한 움직임의 맥락 속에서 정립되면서 매체의 기본들을 엄격하게 누르고 있던 구조영화에 대한 질문의 한 부분이었다. 여기서 실체로 대체되는 모든 물질들은 새로운 집합으로 다시 구조화되지만 그래서 물질성은 경험이 된다. 


확장영화에서 물질성을 경험으로 환원시키는 효과는 단일적 이미지들과 그 효과의 교환관계를 위한 장소를 거부하고 발생하는 다층적 사건들을 위한 수행적인 공간의 유동성을 창출한다. 이미지는 장소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점유한다. 
중립적인 환경 혹은 명확한 관계교환 속에 나이브하게 던져져 있는 자연으로써의 장소을 거부하고 구체적인 수행의 의미 기입될 수 있는 개인적이고도 그래서 무엇보다도 강력한 공간화 된 경험의 부피를 던지는 것이다. 

 

 

 

 [Peter Campus, video workshop]

 

1977년 피터 캠퍼스 Peter Campus는 관람자의 머리 즈음에 초점을 맞추어 카메라를 뒤집어 돌리고 어깨 정도의 높이에서 벽에 장착하였다. 관람자가 카메라 앞에 오면 프로젝션이 되고 있는 자신의 눈 앞에는 관람자 그 자신의 머리와 어깨의 이미지가 거꾸로 뒤집어진 채, 마치 벽에 거꾸로 매달린 듯 보이는 머리와 어깨의 형상이 확대되어 다시 자신을 보고 있다.  보는 이는 머리를 완전히 뒤집을 수 없으므로 벽에 거꾸로 매달린 자신의 얼굴을 고통스럽게 쳐다본다. 매달린 이미지를 뒤집기 위해서 실제의 머리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체가 벽에 거꾸로 매달려야만 할 것이다. 바로서기 위한 계속적인 머리의 운동은 어느 한쪽은 항상 거꾸로 서기 때문에 고통스런 노력에 불과하다.  이는 보고 있는 이를 순수한 주관적 경험의 상태로 데리고 가는데, 매체의 개입으로 자기 자신과 상호작용하는 그는 온전히 다시 되돌아오는 주관적인 공간의 부피를 신체에 각인하게 된다. 피터 캠퍼스가 1977년 만든 이 작품의 제목 'Aen' 은 '고통' 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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