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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게일 차일드와의 인터뷰 Interview with Abigail Child,김연정

03/25/2015

에비게일 차일드와의 인터뷰

Interview with Abigail Child

 

김연정(이하 YJ): 먼저, 2008년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에서 회고전을 통해 작품들을 상영하고 작품에 관한 얘기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어서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당신이 여러 매체들을 통해 그 동안 가졌던 인터뷰들과 비슷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한국에서 당신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관객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작품을 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실험 영화를 만들게 되었던 계기들과 초창기의 관심들이 궁금합니다.
하버드대학을 다닐 때 역사와문학을 전공했지만 예술수업 과정들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때의 관심들과 실험영화를 접하게 되었던 계기들은 어떤 부분들이었습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매혹되었던 부분이랄 지, 좀 더 개인적인 느낌에 관한 얘기도 듣고 싶고요.

에비게일 차일드(이하 AC): 하버드에서 공부할 때 영화에 대한 강조는 다큐멘타리와 애니매이션이었습니다. 나는 매 학기마다 필수 강좌들과 예술 강좌, 조각, 드로잉 등을 들었습니다.
그때 예술 과목들이 더 나를 매혹시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역사와 문학에 관한 강좌들도 너무나 좋아했는데도 말이죠.
[그 과목들의 세계에 대한 너무나 풍부한 생각들 말입니다. 그죠?]
그때 나는 실험작품들을 알게 되었는데 애니메이션 선생님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는 렌 라이 Len Lye, 스탠 브랙키지 Stan Brackhage, 립셋 Lipsset 의 작품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특히 립셋과 라이를 좋아했고 브랙키지는 상대적으로 별로였습니다.
그의 유아(唯我)주의와 멜로드라마(DOG STAR MAN을 이야기함)는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브랙키지에 관한 나의 글 "브랙키지 BRAKHAGE" (TEMPLE UNIVERSITY 2007)에 더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나는 대학원에 갔는데 영화를 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지만 대학원 2학년 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 작품은 다큐멘타리에 가까운 에세이였구요. 그리고 어느 날 저녁 나는 완전히 매혹되었습니다. 영화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포함할 수 있구나, 언어, 음악, 문화. 이것이 내 평생의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맨하튼에 있는 아방가르드 극장에서 리차드 포어맨 RICHARD FOREMAN, 마바우 마인스 MABOU MINES 등을 만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 심장이 이런 종류의 것들에 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큐멘타리는 더욱 주제적입니다. 시와 실험영화의 형식적 발명이 매혹적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추구했죠.


YJ: 70년대 중반 실험 영화 작가들의 영향을 언급하면서 홀리스 프램튼 Hollis Frampton, 피터 허튼 Peter Hutton, 조지 랜도우 George Landow, 로버트 브리어 Robert Breer, 스탠 브랙키지 Stan Brackhage, 마리 멘켄 Marie Menken 등 지금은 너무 유명한 작가들을 다 언급한다고 할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고 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미지와 사운드의 몽타쥬 부분에서는 렌 라이 Len Lye, 존 케이지 John Cage 등도 언급 되고 시적 언어의 측면에서 말라르메, 권력의 문제에 관해서는 푸코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당시 당신에게 여러 가지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작업에 실질적으로 반영이 되었던 그때의 여러 가지 영향과 관심활동들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C: ‘가장’ 큰 영향을 말하는 것은 좀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언급한 위의 모든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작품에서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아이디어나 아름다움 그리고 이미지의 강렬함들, 사운드와 음악 또한 중요했습니다. 나는 독일 작곡가인 카겔 KAGEL의 작품을 알게 되었고, 다운타운에서 하는 많은 그의 콘서트, 퍼포먼스, 이벤트, 그때의 관점에서 봤을 때 70년대 초반, 중반의 ‘때 늦은’ 해프닝들을 보러 갔고 매혹되었습니다. 불규칙하고, 어떤 것의 모서리, 이상하고 비트가 맞지 않는 것들이 그 매혹의 부분이었습니다.


YJ: 당신이 써 온 글들이나, 작품에 대해서 쓴 다른 자료들을 보면, 홀리스 프램튼과 스탠 브랙키지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는데, 언어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홀리스 프램튼을 언급하는 면은 언어로써의 영화를 강조하는 당신의 작업과 이해가 쉽게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반면, 스탠 브랙키지에 대해서도 많이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에 대한 생각과 당신 작업의 영향관계를 좀 더 얘기해줄 수 있습니까?

AC: 스탠 브랙키지는 나의 초기 혹은 직접적인 영향은 아닙니다. 전혀. 브랙키지의 시각적 세계의 연구에 대한 그의 허락과 또 그의 작품들에 감사를 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가 샌프란시스코로 옮겼을 때, 1977년부터 샌프란시스코 시네마테크에서 프로그래머를 하던 카르멘 버질 CARMEN VIGIL 이 어느 날 저녁 영화 상영에 나를 초대하였습니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영화들을 보았습니다. 방문한 아티스트들 중에는 쿠벨카, 프램튼, 스노우 등이 있었고 우리는 같이 어울렸습니다. 카르멘은 또 우리에게 워렌 손버트 WARREN SONBERT 와 닉 도스키 NICK DORSKY 를 소개했고,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리가 하고 있었던 것, 우리가 좋아했던 것을 토론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고, 우리는 함께 영화상영과 콘서트를 다녔습니다. [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쓴 "브랙키지 BRAKHAGE" (TEMPLE UNIVERSITY 2007), 그 글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 곳에 그에 대한 나의 복합적인 반응과 감사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YJ: ‘소란 Mayhem’을 만들 때 당시 지배적인 페미니즘 담론의 주류, 로라 멀비의 글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의 측면도 있었고, 그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페미니스트나 커뮤니티로부터 소외되었고 공공채널에서 검열과 비난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로 인한 좌절감도 컸다고 하고. 급진적인 작업을 계속 하면서 이런 공적인 반응들, 외부에서 오는 영향에 기인하는 좌절들이나 개인적 감정들의 타격도 있을 텐데 어떻게 조율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 관객이 당신의 작품이 ‘너무 공격적이다’라고 했을 때 당신이 ‘현실은 더 공격적이다’ 라고 했던 말도 기억이 나는데, ‘소란 Mayhem’ 을 두고 일어났던 상영 거부나 검열에 관한 상황들이 이를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AC: 이 문제는 계속해서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는 부분입니다.
심지어 지난 해 가을에 이런 종류의 일이 있었는데, 하버드에서 나의 회고전을 할 때였습니다.
영화 쪽에 있는 한 나이든 비평가가 내 작품이 한번에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는 이전의 인터뷰에서 나에게 내 작품은 ‘80년대에 너무 공격적이었고 아무도 보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었죠.

나는 그런 보수적인 반응들에 항상 충격을 받았습니다.
폭로나 누설 보다 해결로서의 예술을 더 선호하는 그런 반응들 말입니다.
예를 들어, 힙합이 80년대에 나타났고 니카라과 콘트라 전쟁도 그때 발발했죠.
나는 그 당시 힙합에 관한 비평가들의 리뷰를 읽었었는데, 그들이 그러한 문장들을
내 작품에 관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놀라운데,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같은 상태에 있는 작품을 원합니다.
사건과 덜 관련되고 우연의 개입은 없는, 그들의 개인적인 과거 안에서 20년 혹은 30년 된 것들과 연결된 그 같은 상태 말입니다. 어떤 경우이던지, 나는 나의 ‘락앤롤’ 시대를 향유했던 것이 너무 기쁩니다. 다시 한번 새로워지기를 바라구요. 그 시간들은 우리의 분노에 대해 가치가 있습니다.


YJ: 내러티브적인 요소를 해체적이거나 전복적인 방식으로 다루어 오고 있고 그것이 당신 작품의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내러티브는 내 작품을 관통한다. 내 생각에 내러티브를 지우는 것은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에서의 연속성에 대한 감각은, 내게 그리고 나의 경험과 내 기억에 비추어봤을 때 결코 진실한 것이 아니다.”같은 말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내러티브적인 요소를 항상 염두 해 두고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철학적인 것을 강조하는 더 추상적인 형태의 추구들도 한 측면입니다. 작업의 스타일에서, 내러티브의 매력보다는 당신이 항상 얘기해 오는 주류적인 권력에 대한 전복을 고려할 때, 이는 전략적인 장치에 가까운 것입니까? 그러나 한편, 내러티브들이 흥미롭고, 그것을 해체할 때, 그리고 해체되는 것을 볼 때 미학적인 쾌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C: 내러티브는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먼저 이것은 주류 영화들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또 ‘어떻게 지내니? 라고 묻는 우리 일상의 언어이기도 하구요. 사람들이 사람을 만날 때의 작은 이야기들이죠. 또 나는 때로 내러티브가 신체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내러티브를 소유하고 있는 인간적 신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나는 플롯에는 관심이 없는데, 그러나 내러티브는 철학적인 것 같습니다. 시간과 일상성을 다루면서 말이죠. 내러티브는 또한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것 같습니다: 누가 그 이야기를 했나? 누가 배제되었나? 나는 내러티브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데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의 역사적 시간에 관한 너무나 많은 ‘법칙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것은 ‘전략’이기도 한데, 뒤틀고 역전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법칙들, 트위스트들, 관심들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과 연결된 전략들입니다. 단지 예술가들의 손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듯 하죠.

쾌락에 관해서 말하자면, 물론 맞습니다.- 변형은 마치 하나의 쾌락이기도 합니다.
- 아마 우리가 성장한다는 사실은 이 쾌락을 포함하고 있을 것입니다.
시간은 변하고 그래서 그런 변화들을 만드는 힘은 쾌락적입니다.
비록 이것이 내러티브적으로 채널화될 필요가 없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예술을 만드는 힘,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세상을 만드는 힘이 쾌락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YJ: ‘이것이 당신이 태어난 이유입니까?’ 시리즈에서, 필름 역사의 다양한 차원에 대한 반응들이 담긴 ‘위기 perils’, 그리피스와 초기 영화를 언급하는 ‘소란 mayhem’, 장르 영화 중에서 느와르와 홈 무비를 언급하는 ‘은밀한 행동 covert action’ 등 다양한 영화 역사에서 뿐 아니라 아마츄어 필름 등의 자료를 활용한 파운드 푸티지 작업도 당신의 작품들을 언급할 때 항상 거론되는 얘기들입니다. 그 시리즈뿐만 아니라 현재까지의 최근 작업들에서도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TV나 광고, 게임 이미지 등 시각적 이미지들이 너무 광범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파운드 푸티지의 영역과 범위들도 확장이 되고 있는데, 영화 내의 재료들 이외에 근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C: 사운드 부분에 있어서 나는 종종 텔레비전 광고나 게임의 소스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유명한 작품에 대해서는 좀 망설이는데; 히치콕이 말하는 것 혹은 최근의 많은 동료들이 ‘툼 레이더’나 ‘대단한 차 도둑‘ 같은 비디오 게임 재료들을 사용하는 것들입니다.
나에게 있어 이것의 문제는 그 작품들 자체로 판타스틱 하고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들을 리메이크 해야 할까?
대신 나는 남은 재료들을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소실되고 잊혀진 것들의 감각 같은 것이 좋습니다. 거기서 나는 다시 그들을 새롭게 할 수 있고 파괴할 수도 있고, 다시- 재생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YJ: 사운드 작업을 할 때의 과정도 궁금한데, 언어적 몽타쥬로 언급되는 부분 외의 음악들은 예를 들어, 작곡가나 음악감독과 공동작업을 하시는지?

AC: 초기에 나는 음악적인 구체적 몽타쥬의 부분들을 스스로 다 했습니다.
음악을 한 번 사용하기 시작하자, 음악가들과 곧 연류가 되었는데 ; 존 조른, 크리스티안 마클레이, 지나 파킨스, 이쿠에 모리 John ZORN, Christian MARCLAY, Zeena PARKINS, Ikue MORI 같은 음악가들입니다. 때로 그 연주자들은 나에게 음악을 주고 내가 자유롭게 자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어떤 때 그들은 몇번 작품을 보고 곡을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그림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한번 가보기도 하죠. ‘소란, 위기, 표면 소음, B/side’ 같은 경우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우리는 원 테이크 보다 더 많은 테이크를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소스들과 가장 최상의 트랙 사이에서 고를 수가 있게 되는 거죠. 나는 정말 그때 믹싱에 관해 많이 배웠습니다.
어떻게 사운드를 믹싱하는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지를 말이죠.
두 경우 모두, 필름메이커들은 녹음된 채 듣기 위한 사운드보다는 이미지에 기능하는 것으로 음악을 만듭니다. 이것은 아주 다른 과정들입니다. 보통 이 협업, 이 코디네이션은 쉬워요- 만약 우리가 어려움들을 만난다면, 우리는 최상의 것을 만들게 됩니다.


YJ: 이미지와 사운드의 몽타쥬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에이젠슈타인이나 베르토프 등의 초기 몽타쥬 작가 뿐만 아니라 더 잘 알려져 있는 영화 역사에서, 고다르, 프램튼, 브레송 등을 언급한 것도 보았는데, 사운드에 관해서 영화 내적 유산에서 영향 받은 부분들은 어떤 부분이었는지 더 자세히 얘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리고 최근의 사운드 작업에서는 어떤 점을 가장 염두 해 두는지, 다른 작가들의 사운드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듣고 싶습니다.

AC: 베르토프와 에이젠슈타인 모두 사운드 필름 하나씩 작업했습니다.
그들은 물론 대단한 감독들 입니다. 베르토프 작품은 쿠벨카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데, 사실 쿠벨카가 내 사운드와 이미지 조합에 많은 영향을 끼친 감독입니다.
그의 ‘아프리카로의 우리의 여행’ 영화는 대단한데, 교란적이면서도 아름답고, 통렬함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특수한 성취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사운드에 관한 사용은 궁극적으로 정치적인데 그것에 더하여 그 본질적인 음악성은 매번 나를 놀라게 합니다.
나는 최근에 다른 종류의 음악적 트랙들에 관해서 탐구하고 있는데 배경음악과 폴리를 담당 하는 사람과의 작업입니다. 이런 작업은 ‘B/side’에서 시작되었는데, 작곡의 부분에서 이쿠에 모리 IKUE MORI 와 폴리/배경/효과에서 기스버그 GISBURG (뉴욕에서 활동하는 독일 아티스트)와 함께 했습니다. 초기 작업과정에서 이 영화의 부분은 작업의 다른 양식들을 생각할 동안 잠시 동안 빼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부분들과 연결되어 있는 더 작은 작업은 ‘나’의 개입을 통해 합쳐집니다.
때로 결합이 안 될 때도 있죠.; 도움과 추가적인 지원에 의한 더 큰 작업도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나는 예상치 못했던 것을 기대하는데, 강조로써의 사운드, 이미지만큼 중요한 사운드, 이미지를 변형하는 사운드 같은 점들입니다. 심지어 그 사운드들이 동조적인 사운드라고 할지라도 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관객들의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을까? 근본적인 방식에서, 예술은 주목에 관한 것입니다.- 보통 무시되는 것들에 대한 주목, 말이죠. 그래서 어쨌든 내가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한 부분입니다.


YJ: 새로운 언어의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당신은 사운드/ 이미지 몽타쥬의 힘 있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의 몽타쥬들도 중요하고 실질적인 작업 과정에서는 편집의 측면에서 많은 것들이 조율될 것도 같은데, 각각의 과정들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작업의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미지나 사운드 편집의 조율방식은 어떠합니까?

AC: 나는 의도적으로 하나의 벡터로써의 사운드에 집중했습니다.
70년대 초반과 후반에 말입니다. 사운드와 이미지는 발견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열린 장 같이 느껴집니다. 비록 부활 혹은 결코 상실하지 않는 것? 의 측면도 있지만. 직선적인 시각적 작업 안에서의 쾌락, 지금 이 순간 미니멀리스트의 작업 안에서의 쾌락이 있습니다.

때로 나는 영화 재료들을 무성으로 작업하고 그런 다음 그들을 발전시킵니다.
사운드를 부가해서 모양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거죠. 사운드 없이, 영화는 확실하게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림은 사운드와 의미, 리듬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적인 변화를 가집니다.

때로는 사운드와 이미지를 바로 작업하는 데 특히 사운드가 싱크가 될 때 입니다.
‘반란, 써프 앤 터프, 중국에 관한 새 영화, 거울 세상’ 같은 작품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때로 나는 특정한 그림들에 사운드를 붙여봅니다.
그리고 그 다음 흐름에 따라 그림들은 변하고 그 영화 위에 다시 사운드를 놓습니다.
그렇게 작업한 작품들은 ‘은밀한 행동 표면 소음, 소란’ 이구요. 때로 음악은 핵심적인 것입니다. ‘ 미래는 당신 뒤에 있다’와 ‘솝 오페라’ 트랙과 같이 가는 ‘소란’ 등 입니다.
그래서 내 앞의 프로젝트에 따라 너무나 많은 다른 방식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당신이 태어난 이유입니까’ 시리즈는 특히 그렇게 구축되었는데, 각각의 영화는 사운드와 이미지의 다른 관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역을 즐기기 위해서는 기회들과 치환들을 시도하라는 것입니다.


YJ: ‘미래는 당신 뒤에 있다 The future is behind you’ 같은 영화에서의 사운드는 가족적 연대기에 대한 허구적인 내밀한 내러티브들도 있지만 동시에 멜랑꼴리한 음악들이 묘하게 감정을 깊이 있게 끌고 가는 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사운드와 음악에 관해 말씀해주신다면?

AC: ‘미래는 당신 뒤에 있다’는 내가 이제 껏 만들어 온 어떤 작품들보다 ‘내용’이 있는 영화입니다. :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인 순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소녀들의 성장과 성 정체성의 형성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언니는 원래 더 말괄량이인데 사춘기 이후에 부끄러워하는 더 여성스런 성인이 됩니다.)
물론- 역사와 개인적 삶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그들 스스로를 프리젠테이션 하는가와 무엇이 ‘정말’ 일어나고 있는가 – 이 사이에서의 철학적인 연결/ 혹은 잘못된 연결 mismatch 들도 있습니다.
음악은 초반에 사용되었고 이것은 내가 작업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가는 진동을 주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경우 사람들이 이 이야기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것은 허구입니다.; 아마 음악의 감상성이 이 느낌을 더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역사적 감각은 필수적이었습니다. 텍스트 안에서 나오는 나의 질문들은 명백한 스티치를 만들기 시작했었던 것만큼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작품 안에서 - 리얼리티 안에 있는 망설임- 자아- 이야기와 내러티브의 의식.; 역사와 위치 짓기의 건설. 누가 말하고 있나: 상실자 혹은 정복자? 희생자 혹은 고문자? 같은 부분들이죠.  


YJ: '표면 소음 Surface Noise'은 개인적으로 정말 흥미롭게 본 작품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이미지 자체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운동과 감각, 사건과 사람들에 관한 축적된 표면의 흐름 같은 느낌들이 참 좋았고, 이전의 작품들에서 빠르게 진행되던 리듬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그런 감각들을 깊이 있게 끌고 가고 있는
느낌도 들었구요. 또 당신이 언급했던 말 중에, '나는 더 깊이 갈수록, 표면에 이르른다.' 라는 부분도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 측면과 관련해서 영화에 관해 더 얘기해주신다면요?

AC: '표면 소음'은 "무"에서부터 영화를 만들고자 한 하나의 시도였습니다. 이미지들과 사운드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나는 소나타의 구조를 사용했고 그 부분에서 도움을 준 음악가와 같이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 작품은 리듬 뿐만 아니라 번역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마치 주도적인 사운드의 아이디어들로부터 이미지를 번역하는 것이지요.


YJ: 2007년 작품 인 ‘ 서프 앤 터프 Surf and Turf ’ 에서는 비판적인 시선과 황량함, 디아스포라적인 해변의 인터뷰와 이미지들과 함께 빠른 몽타쥬와 흥겨운 써핑 음악이 나오는 부분들이 종종 삽입이 되어있습니다. 그 부분의 사운드에 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AC: 써핑 음악은 코믹한데 이 부분은 종교적인 인물들과 그들의 편견들의 무거움만큼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동부 해안가에서 반어적인 써퍼들의 물러가는 물결 “UNDERTOW” 같은 것이죠.
이 노래들은 60년대 캘리포니아의 삶에 대한 세레나데였고 서부 해안가는 미국적인 욕망/ (디)비전(Di)vision 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과의 연결/잘못된 연결이었습니다. 맨하튼과 가까운 해변의 모든 문화는 파라다이스에 대한 지중해적인 것과 서부 해안가의 비젼에 깊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대단하죠"그래서 음악 안에서의 전치는 감각을 만들었습니다.
비일상적인 것을 강조하고 동시에 교외 거주인들의 삶의 진부함, 평범함에 대한 배경음악이죠.


YJ: 당신의 다큐적 작업에 관해 질문해보고 싶은데요, 다큐 작가로 본격적인 영화 경력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7편 정도의 독립 다큐멘타리를 제작하고, ‘ 다큐적 형식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라는 언급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큐 작업에도 여러 가지 실험들이 존재해왔는데, 예를 들어 다이어리 형식이라든가, 의사 다큐 Fake-docu 같은 방식들로 작업을 지속하는 작가들도 있고 다큐적 색채를 지니지만 더 일기적인 실험영화에 가까운 요나스 메카스 같은 작업들도 있습니다.  
이런 작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고, 최근에 ‘써프 앤 터프 Surf and Turf’ 같은 작품을 통해 좀 더 적극적인 다큐적 시선을 다시 기입하고 있는데 초창기의 다큐 작업을 할 때와 어떤 변화의 지점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C: 나는 많은 방식에서 나의 모든 작업들을 다큐멘타리로 생각합니다.- 내러티브들은 항상 그들이 촬영되었던 시간과 기간의 기록들입니다. 다큐멘타리는 항상 필름메이커와 카메라, 편집과 함께 현실에 대한 개입들이구요.
– 어떤 종류의 허구입니다.
그래서 차이들은 어떤 점에서 개입할 것이 많은 가하는 부분이고 필수적으로 도움이 된다거나 안정적이라든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좌파 사회주의 다큐멘타리들을 초창기에 만들었고 성차 혹은 커뮤니티 혹은 신체에 관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앞에서 스스로 ‘주제’를 부여하며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직접적인 실험 작품들로 옮겨갔습니다. 최근에 나는 커미션 때문에 다큐멘타리로 돌아갔는데,
그렇게 권위적인 다큐멘타리를 계속적으로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에는 돈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 주는 사람들로부터의 너무 많은 간섭이 있습니다. ! 내가 확신하듯이 많은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발견됩니다.

형식을 바꾸는 것은 더 깊고 더 지속적인 것 같습니다.
다큐멘타리는 나를 좌절시키곤 하는데 그들의 수준 혹은 성공은 종종 그들의 ‘주제’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특정한지, 유명한지, 이상한지, 슬픈지 그 혹은 그녀 혹은 그것 등.
어떤 점에서 예술/ 아방가르드 영화는, 그림자에 관해 얘기할 수 있고 그것의 감정적 밀도, 순간, 상응할 만한 시들을 줄 수 있습니다.


YJ: ‘B/side’는 도시 홈리스의 문제와 이중적 실패 등을 다루고 있는데, 이런 사회적 이슈와 실험적 작가로써의 미학이나 형식적인 부분들에 대한충동이나 욕망이 있을 것 같은데 작업에서 조율되는 방식은 어떠합니까?
이런 식의 구분법이 전혀 틀린 것일지도 모르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제기한다고 해도 이전의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실험적인 형식들을 본다면, 그런 영화 내적인 부분과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부분들에 관한 차이들이 있을 것 같고 그런 생각들이 어떻게 조율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C: 이번 여름에 나는 미에 관해 생각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예술가들이 리얼리티를 미학화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수집하는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현실에 대한 비-증명 같은 방식 안에서겠지요. 나는 지금 캐나다의 노바 스코샤라는 아주 아름다운 곳에 있는데 이곳은 모든 것이 대단하고,
미란 이런 질문들을 하고 있는 나의 얼굴 앞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아름다움을 정말 사랑하는데 그것은 쉬운 것, 아마 미니멀리즘 같은 거겠지요.
- 이것은 삶의 외부와 내부에서 수집된 것들, 모여있는 것들을 진정시킵니다.

그러나 그건 단지 그거겠죠- 때때로, 나는 미를 생각합니다.
혹은 우리의 일상적인 미에 대한 정의들은 어려운 리얼리티들을 피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모순들 같은 것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여기서 말하자면,
심지어 가장 겸손한 어부도 모든 곳에서 미를 봅니다.
그래서 아마 인간이라는 종은 자연의 미를 파괴시켜왔고 그리고 그를 다시 만들어야만 하는 게 아닐까요? 필수적인 미 같은 것?

다시 도시와 사회적 이슈들, 그러한 모순들과 질문들의 어려움으로 돌아갑니다.
– 위대한 도전이 많을 수록 더 필수적인 도전이 많이 생깁니다.
- 평화로운 정착 안에서 중심 잡힌 머무름 보다 카오스 안에서 중심을 잡아 어떻게 머물 것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변화하듯이, 내 작업도 변화합니다.


YJ: 당신은 사진가로 작업을 시작하고 꼴라쥬 등의 평면작업도 했었는데, 영화를 찍을 때와 매체적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설치나 작업에서의 확장적인 부분도 시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각각의 매체들을 다룰 때 접근하는 차이점들이 있습니까 ?

AC: 사진을 했던 기간은 짧았고 몽타쥬도 나중의 일입니다. 그들은 실습의 장소로서 나에게 작용합니다.내가 영화를 만들 지 않을 때 내 손과 눈을 계속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장소입니다. 나는 그 시간을 굉장히 즐깁니다.- 페이지를 점유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프레임을 구성 하는 것과 아주 다른 것입니다. - 어떻게 눈이 여행하는지, 시간은 어떻게 여행하는 지 등등 모두 다르지만 그 집중과 때때로 이슈들은 비슷합니다.

설치들은 아직까지 다른 부분입니다. : 어떻게 관객들을 캡쳐 capture 하는가, 복잡하게 남아 있지만 어떻게 관객을 잃지 않는가.
어떻게 공간적인 부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가? 나는 설치가 특히 중요하다고 느끼는데 왜냐하면, 어떻게 우리가 작품을 보는가는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는 어떻게 우리가 움직이는 차 안에서 빌딩들을 보는 가에 관해 얘기합니다. 그는 60년대 후반 이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때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영화들을 보는가? 집에서? 공항을 지나며 걸으면서? 텍사스에서? 지하철에서?
그리고 어떻게 그 유동성은 우리의 경험을 바꾸는가? 압축적인 밀도를 그 과정 속으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나는 아무것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YJ: 문학 활동과 컨퍼런스도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들의 이미지들도 활용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마치 현대의 멀티미디어 작가들이 주로 시도하는 혼합매체 작업처럼, '리딩 퍼포먼스'같은 형태 일 것도 같습니다.

AC: 나는 다섯 권의 시집과 한 권의 비평서를 출간하기도 했는데, 컨퍼런스때 영화를 보여주거나 심지어 시를 위한 영화를 만들기도 합니다. : 작품 '거울 세상 Mirror world'은 나의 시를 위해 만들어 진 것 중 하나입니다. 'TO and no fro'의 경우도 그러하구요.
언어와 이미지들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엮이죠. 영화라는 것 자체가 멀티 미디어이죠.  


YJ: 시인으로도 알려져 계시듯이, 당신의 작품에서도 많은 시적인 내러티브나 사운드들이 등장합니다. 시나 문학으로부터의 영향은 어떠합니까?
또, 당신의 글 "멜로드라마와 몽타쥬"를 보면, 문학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서 영화 만들기의 구조적인 문제로까지 나아갑니다. 언어와 영화 사이의 구별점, 변별점에 관한 당신의 언급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떻게 영화구조에 대한 언어적 개입들을 다루는 지 궁금한데요.

AC: 이건 정말 중요한 질문인데요, 난 과정과 구조라는 측면에서 대부분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편집의 과정과 비슷한 것이지요. 마치 샷이나 씬들을 자르듯이 단어와 구들을 자르지요. 구조적으로 어떻게 그들이 함께 가는 지를 생각합니다.
사실, 언어와 영화의 관계에 관한 부분도 큰 질문 중의 하나인데, 내 모든 책들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어(그리고 음악)은 내 작품의 기본적인 요소들이고, 정확히 얘기하면 개입적인 부분이 아니라 영감으로써 나는 그들을 생각합니다. 언어는 영화구조에 대한 영감이며, 그 역도 성립합니다.
나의 책 "움직임이라 불리는 것"의 서문과 찰스 번스타인과의 인터뷰를 보면 이러한 나의 생각들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YJ: 최근의 실험 영화뿐 아니라 예술적인 실험들을 보면 매체를 다양하게 쓰는 경향을 많이 발견합니다.  이런 매체적 결합에 대한 의견은 어떤 지 궁금합니다.

AC: 나는 내 작업들이 텍스트와 사운드를 사용할 때 매체들을 오간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그 정의로 봤을 때 거의 하나의 혼합 매체가 아닐까요?
영화는 캐릭터, 행동, 플롯, 시나리오, 편집, 음악, 언어, 문화, 의상 등을 포함합니다.
영화의 큰 다양성과 포용성은 이 매체에 대해서 내가 가장 먼저 매혹을 느낀 부분입니다.
영화는 모든 나의 관심들을 흡수합니다.


YJ: 실험영화의 핸드메이드는 그 독특한 미학으로 인해 아직도 그만을 고수하는 작가들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디지털의 관습적인 효과만큼이나 어떤 면에서 관습적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순간, 디지털의 화면 분할 만큼이나 지루한 옵티컬 룩 같은 것들이요.
당신도 핸드메이드 작업을 했었고, 최근에는 디지털 작업도 많이 하고 있는데 두 매체 혹은 방식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나 의견이 있는 지 궁금합니다.
또 디지털로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당신의 작업 스타일에서 바뀐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AC: 나는 필름을 좋아하고 필름으로 작업하는 것이 그립습니다. 최근에 16미리 촬영을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집은 디지털로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차이들이 있습니다.
디지털은 옵티컬 프린터 같기도 하고 마치 편집자 같기도 합니다. ; 그런 역할을 다 하고 있고 나는 그런 점에 감사합니다.
또 파이널 컷 프로는 그 부분에 관해 멋진 풍부함을 가지고 있구요.; 그 프로그램은 어떤 점에서 조각적인데 그 점은 설치작업처럼 나를 이끕니다.
그리고 장소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에 있어 다른 종류들로 이끌어 가지요.
  
부가적으로 말하자면, ‘써프 앤 터프’에서, 처음으로 나는 “스크루빙 SCRUBBING”을 사용합니다. 스크루빙은 당신이 디지털 타임 라인에서 이미지를 아래로 내리고 옆으로 왔다 갔다 할 때 일어납니다. 여기서 나는 재료들을 선택해 왔는데, 스크루빙 안에서 스케일과 리듬감 있게 플레이 되는 재료들, 그로부터의 편집과 레코딩. 그 부분에서 흥미로운 과정은 그것이 싱글 프레임의 랜드스케이프의 독특함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창조와 새로움이 디지털과 가능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좌절은 최종적인 뷰 view 입니다.
: 필름은 더 많은 매혹이 있지요. 최근의 작품에서 나는 비디오와 함께 필름을 같이 쓰는데 당신은 정말 필름 작품들이 나타내는 색깔과 채도, 좋은 해상도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YJ: 실험 영화에서 배급이라는 부분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국에서는 실험영화라는 것 자체의 전통도 빈약할 뿐 아니라, 미술이나 영화 등 예술계들이 좀 더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는 측면이 있어서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들의 경우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들이 협소한 것 같습니다.
당신은 실험영화가 활발하던 당시 젊은 시절 미국 서부 최대 배급사인 Canyon Cinema 에서도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험 영화와 배급의 문제에 관해서 경험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영화제나 미술관 등 다양한 전시와 상영에 대한 경험도 많으실 것 같은데, 그런 부분도 아울러 얘기해주시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AC: Canyon에서 일하는 것은 굉장했습니다. 영화들이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있고 몇 유명한 영화들을 가깝게 만질 수 있지요. 내가 기억하는 정말 좋은 순간들은 스노우의 영화 ‘파장’과 관련된 것이고 잠시 동안 폴 샤리츠의 모든 영화들을 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급은 어렵고 DVD는 이를 더욱 심화시킵니다.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복사를 할 수 있습니다. 필름 대여가 줄어들까요?
그리고 그 다음엔 필름 프린트들은 파괴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디지털은 저렴한 대체, 임시 증대이지요

나는 사람들이 웹 상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습니다.- 대중주의의 폭발!
그러나 만일 이미지의 화질 저하, 수준의 퇴보가 있다면요? 만약 볼 수 있는 회화 작품이 없다면 어떨까요?
단지 엽서에 나오는 회화들만 있다면요?
예술적인 영화와 갤러리 작품 사이에는 구별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큰 실수이고 그런 부분이 이다는 것이 혼란스럽고 이 부분에 흥미가 생깁니다.
나는 만약 당신이 역사적으로 이런 부분에 관해서 본다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 더 이상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은 없습니다. 20년대와 30년대에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여전히 아방가르드 음악, 시, 댄스, 영화가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대부분 시장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시간 예술들이라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업적이거나 구속, 억압, 검열에 의하지 않은 것들이죠. 그래서 외부, 주변적인 것에 존재하는 것이 허락됩니다.
이것은 물론 좋은 것이기도 하고 나쁜 것이기도 합니다.
: 누군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에 자유롭기도 하지만 무시될 수 있는 것에도 노출되어 있죠.
예술계는 실험영화의 역사에 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이들이 수집 하기에 어렵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터가 있니? 등) 60년대에 무시되었던, '이익'이 없지 않니? 등-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희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실천가들이 죽기 전에 이것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요!


YJ: 보스턴 박물관 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데, 미국에서도 뉴욕과 서부 일대가 실험 영화 아직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곳곳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있는 것 같은데, 보스톤에서의 실험영화 활동이나, 독립예술에 대한 활동들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AC: 보스톤은 독립 영화제작들이 활발한 곳입니다.
다큐멘타리들은 역사적인 베이스를 가지고 있는데, 초기 캠브리지에서 직업했던 프레드 와이즈만이나 리코크-페네바커 등의 영향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톤 박물관과 하버드 아카이브, 매사추세츠 예술학교 더불어 모든 학교들에서 당신은 정말 일주일에 7일 동안 흥미로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브랙키지, 도스키, 데런, 액커먼 혹은 클레어 데인즈 혹은 고다르 혹은 더글라스 고든, 스티브 맥퀸 혹은 가이 매딘 혹은 장 주네 혹은 왕가위 혹은 가장 최신 포르투갈 영화와 나이지리아 영화들을 볼 수 있습니다.
-  모든 작품들이 다양한 곳에서 가능합니다.
보스톤은 활기가 넘치는 곳이지만 사실 내가 그곳에 살지 않기 때문에 보통 매주마다 뉴욕으로 돌아가죠, 나는 단지 보스톤의 넓은 지형 중 조금의 맛만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YJ: 예전의 인터뷰들을 보면, 고다르, 그리피스, 히치콕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감독들의 영향도 가끔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최근의 흥미나 관심이 가는 작품들이나 감독, 성향들이 있습니까? 현대의 영화들 또한 그러한 유산 이후 새로운 감독들, 담론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오시마 나기사 같은 감독의 이름도 흥미로운 작가로 언급이 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혹시 다른 동양의 영화나 감독, 문화들에 대해 관심 있는 것들이 있습니까?

AC: ‘거울세상’에서, 나는 발리우드 영화 Mehboob Khan’s AAN 을 사용합니다.
나는 발리우드를 사랑합니다. – 대중주의의 과잉!
그리고 물론 오시마도 그렇고, 구로사와의 몇 작품과 현대 홍콩 영화들- 왕가위 같은 작품도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 아주 흥미로운 사람은 중국 감독, 지아 장커 입니다.
그가 만들어 온 모든 작품들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훌륭합니다 !
나는 어떻게 그가 물질적인 메타포를 만드는 지를 좋아합니다.
혹은 그것보다 어떻게 물질적인 세상이 상징적으로 되고 의미로 가득 차는가 하는 부분을 좋아합니다. 계시적입니다.
당신은 몇몇 새로운 한국 감독들도 알려주어야만 할 것입니다. 나도 현재 몇몇이 주목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YJ:  '써프 앤 터프" 가 다큐멘타리적 관심을 기입한 가장 최근 작품인데요,
이러한 사회적인 관심과 관련된 작품을 더 만들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하고,
혹은 새로운 프로젝트는 어떤 것을 생각하고 계신지요?

AC: 새 작품은 현대 중국에 관한 것인데 다큐멘타리적인 관심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보'나 '사실'의 측면에 입각한 것이 아니며 설명적인 부분도 없습니다.
대부분 동시적인 사운드로 이미지만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요.
나는 '정보'로 부터의 압박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좀 아이러니하지만 사실들에 대한 좌절은 동시에 솔직한 부분이기도 하죠.


YJ: 최근에 중국에 잠시 머무르면서 강의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경험들이었습니까?
그리고 당신 작품에 대한 부분들을 관객들이나 학생들과 얘기할 기회도 많았고 다양한 반응을 접하셨을 것 같은데, 새로운 작품을 생각하시면서 이러한 반응들도 반영이 되었습니까?

AC: 네, 2006년 10,11월에 중국에 있으면서 베이징 영화 아카데미에서 실험영화를 가르쳤어요.
물론 너무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학생들 모두 너무 흥미로워하고 재능이 넘쳤어요.
(생각하기에, 그렇게 많은 인구 중에서 모인 학생들이라 다들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지요.) 그치만, 모든 곳에 있는 다른 학생들처럼 그들도 재밌게 옷을 입고 다니고 수업시간에 뭔가 먹고 그러더라구요!
난 학생들을 들볶아 댔는데 그들은 아주 친절했어요. 미국인인 내 대학원 학생 하나가 중국어를 할 수 있어서 나와 함께 동행했는데 우리가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은 그녀가 러시아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 그리고 40시간 가량 촬영한 푸티지가 있는데 내 생각에 너무 좋아요. 조용하게 관찰적인 방식을 유지하죠.
중국은 물론 빠른 근대화에 따른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거대한 곳입니다.
나는 좀 더 섬세하게 이런 부분에 관해서 명확한 푸티지들을 만들고 싶어요.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프로그래머 김연정
EXiS 2008 Programmer YeonJe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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