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an Kim

[N’Avant 03] 환유적 교란 혹은 의지적 물신의 스타일들,김연정


[N’Avant 03] Focus on; FoundFootage

환유적 교란 혹은 의지적 물신의 스타일들-김연정 Metonymic disturbance or decisive fetish` s style by yeonjeong kim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의 만 레이와 뒤샹에서 우리는 의도치 않은 혹은 전치된 형태의 파운드 푸티지 작업의 흥미로움과 마주하게 된다. 이미 존재하는 질료로써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전혀 다른 공, 통시적 관점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꼴라쥬나 몽타쥬의 전복성과 관련되어 파운드 푸티지 작업의 여러 가지 효과들 중에 하나로 강조되어 언급되어 왔다.

흥미로운 점은 '개입'으로써의 파운드 푸티지 작업은 이미 있는 것, 이미 존재하는 것을 예기치 않은 문맥 속에 갖다 놓음으로써 대상 자체가 아니라 문맥으로 관심을 끌어내는 레디메이드 작업의 개념적 형태를 통해, 물신화 되는 이미지, 사운드라는 질료와 나란히 하나의 추상적 목적으로 개념화되는 '언어'의 형식을 속성화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운드 푸티지 작업의 다양한 스타일들이 양가적으로 혹은 맹목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은 언어로써의 환유적 교란 혹은 질료에 대한 의지적 물신화이다.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 파운드 푸티지 작업을 논의할 때 일반적으로 상기되는 역사적 문맥을 상기시킨다기보다는 뒤샹과 레이의 과도한 전치 혹은 압축처럼, 또 연결이 아니라 병치라는 몽타쥬에 대한 열렬한 가능성처럼 파운드 푸티지와 긴밀히 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도약적인 부분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압축'은 특정한 하나의 표상이 여러 표상들의 연쇄의 교착점에 존재하는 것이고, '전치'는 어떤 특정한 표상에 대한 악센트, 흥미, 강도 등이 그 표상에서 분리되어 다른 표상에 달라붙는 것이다. 만 레이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업들은 영화보다 오브제 작업에서 더욱 확실한데, 오브제가 위치한 시공간의 전혀 다른 층위들의 복합화를 현실적 감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레이의 작품들에서 압축은 대부분 여성적 에로티시즘 혹은 전치된 여성성이 고무하는 리비도의 충동이라는 표상으로 대표된다. 만들지 않고 다른 곳에 놓음으로써 여성과 여성성들을 오브제화함으로써, 그는 혹은 20년대 아방가르드는 두 가지 영향을 남겨두었다.

전자는 개입의 목적성이라는 상위 개념에 주목하게 하는 개념미술의 유산과 관련된 것이고, 후자는 초현실주의가 반어적으로 남겨놓은 '찢겨진 개인성'이라는 심리적 한정과 역사성이 만날 수 있는가 하는 논란을 포함하는 60년대 정치학과 관련된 실천으로써의 예술적 논란에 관한 것이다.

마사 로즐러는 1975년 '주방의 기호학'으로 이러한 두 가지 줄기와 만나는데, 모더니즘의 공적 공간이 억압한 주방과 일상적 주방의 도구들은 억압되었던 사적 공간의 귀환으로 혹은 사적 공간을 대리했던 여성적 히스테리아의 내면으로 사유와 철학에 정치적 구조를 부여한 기호학이라는 언어의 이름으로 전치된다.

라캉은 압축을 은유에 전치를 환유에 비유하면서 그리고 절대적으로 기표에 우위를 둠으로써 철저하게 의미작용이 배제된 순수차이로서의 기표를 중심으로 한 자의적 언어이론을 전개했다면, 야콥슨의 언어학은 압축, 전치를 환유에, 상징을 은유에 비유함으로써 비자발적인 혹은 인접한 연결에 도약적 힘을 더욱 실어주고 있다.

그 이유는 은유가 부분적인 이미지를 매개로 한 '동등한 교환'이라면, 환유는 부분과 전체의 '불평등한 교환'이라는 점에서 심급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방이라는 공간 안에서 히스테리컬한 목소리로 여성이 주방의 도구들을 하나씩 전시하며 또박또박 명명할 때, 일상의 오브제는 이미 재현의 은폐된 권력과의 교환관계를 끊임없이 호출하는 그래서 야콥슨이 언어의 수직적, 사회적 축에 계열적, 개인적 축을 투영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렸던 하나의 시적 언어가 된다. 주방기구들의 이름은 환유의 불평등 교환 위에서 계속적으로 돌아오는 억압된 것들의 기호가 된다.

발리 엑스포트의 '리모트...리모트...'(1973)에서 중요하게 던져진 한 장의 대형 흑백사진은 레디메이드를 페티쉬하고 다시 그 페티쉬를 레디메이드로 돌려놓는 반어적인 여운을 선사한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심리적인 메타의 시간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기계 혹은 동물로 확장되는 인간의 행동은 과거의 사건에 영향을 받는다. 경험들이 내재되어 있을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객관적인 시간과 평행하면서, 고뇌와 죄책감의 기도, 승리에 대한 무능력, 살갗을 찢는 변형, 한 사람에게 중요하게 미치는 계속적인 영향이 있는 심리적인 메타의 시간이 존재한다. 나는 이러한 과거와 현재를 재현하는 무엇인가를 증명하고 싶다. (발리 엑스포트, Valie Export, ... Remote ... Remote ... 1973, 16mm, color/so, 12m)

경험과 과거의 외상 등에 영향 받는 심리적 시간에 대한 증명은 두 가지 반어적 전략으로 실행되고 있는데, 자신도 참여했었지만, 존재와 예술의 해방을 위해 극단의 파괴적 미학을 추구하며 여성의 신체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다루었던 오스트리아 빈 행동주의파의 전략을 스스로의 신체에 가하는 폭력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 방식에 대항하며, 전쟁과 나치즘의 정치적인 상황과, 동시에 상실에 대한 개인적인 고뇌를 암시하는 한 장의 흑백사진에 대한 강조로 ‘향수는 상실에 대한 육체적인 반응이다.’의 고통의 감각을 확대한다.

던져진 한 장의 사진은 레디메이드의 본질적 속성을 위험하게 둘러싸고 있는 물신의 가능성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그러나 심리적 메타의 시간을 자신의 신체적 퍼포먼스로 실험하는 시간들을 통과하여 다시 처음에 주어진 레디메이드로 돌려놓는 반어적 전략으로 레디메이드의 임무를 완수하고 있다. 정치적 영화실천과 파운드 푸티지의 연관에서, 질료적 차원의 층위에서 뿐 아니라, 영화적 실천의 개념자체를 재맥락화하는 질 고드밀로우의 '파로키에서 배운 것'(1998)은 영화의 시작에서 나레이터가 ‘이 영화는 완벽한 복제를 향했다.’ 는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하룬 파로키의 1969년작 ‘꺼지지 않는 불꽃'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칼라와 영어로 다시 만들어졌다는 점 외에 스크립트, 카메라 샷, 의상, 세팅 등 거의 모든 부분이 원작에 가깝게 창조되었다. 80년대 후반의 전유와 시뮬라크라에 관해 증대하는 유행과 함께 만들어진 이 영화는 60년대의 정치적인 영화를 다시 불러오는 당대의 정치학을 호출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정치, 사회적인 문제들에 관한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오고 있는 독일의 영화작가 하룬 파로키는 전쟁, 노동, 자본주의, 실업, 권력관계 등의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어떻게 영화적으로 수렴될 수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오고 있다. 이미지를 통한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문제를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그는, 시각적 노출 자체가 본질적으로 포르노그라피적인 속성을 지닐 수 있다는 위험성에 공감하면서, ‘방법론 자체에 관한 탐구’와 단순한 이미지적 재현을 넘어선 ‘관객의 동시대적이고 실천적인 동참’을 강조한다. 파로키의 영화는 하나의 시각을 지지하는 다양하고 풍부한 이미지 언어들이라고 불릴 수 있지만, 그들은 결코 단일한 의미들로 협상되지는 않는다.

<두 전쟁 사이에서>의 노트에서 그는 "이미지를 살 돈이 없을 때, 우리는 분리된 요소들의 연결을 위한 지성에 투자를 해야 한다. 그것은 생각들의 몽타쥬다." 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런 태도는 그의 영화적 소재와 주제뿐 아니라 편집과 구조들을 결정한다. 그의 영화는 오래된 아마츄어 비디오 소스나 뉴스, 사진, 인터뷰, 일기체적인 나레이션 등 혼합적인 요소들 사이를 오고 가지만 결코 이미지 표면의 즐거움 자체를 선사하지는 않는다. 소개된 이미지, 동기, 씬 등은 이후에 다시 조금씩 재변용되어 다른 맥락으로 등장하면서, 관객의 지속적인 사유 과정을 자극한다. 시각적인 즐거움에 젖어들려고 하는 순간 그는 결코 그 유희적 공간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파로키 영화의 대부분의 주제들은 네이팜탄의 생산, 베트남전쟁, 고속도로 건설, 포르노그라피,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문제 등 진지한 사회적 맥락 속에 있다. 하지만 그는 영화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네이팜탄의 제조와 베트남전쟁에 관한 이슈를 다루는 <꺼지지 않는 불꽃>에서 그는 네이팜탄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육체의 전시나 처참한 전쟁의 이미지들을 직접적으로 전시하는 대신 어떻게 극도로 분업화된 노동구조가 전쟁에 대한 개인적인 기여, 네이팜탄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동적인 기여를 은폐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전쟁의 비인간화가 정의되는 곳은 전쟁터 뿐 만 아니라, 개인적인 것 그리고 공적인 사업과 제조 실험실 등의 구체적인 지점이라고 지적한다. 파로키의 전략은 산업사회와 관련된 개인적 노동에 대한 책임감을 묻는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 역시 희생에 대해 감정적인 공감만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러한 도덕적 질문에서 면죄될 수 없으며 전쟁의 책임감에 동참해야하는 존재라는 것을 촉구한다.

질 고드밀로우는 칼라 필름 위에 파로키의 오리지널 흑백의 필름을 중첩한다. 또 재창조의 과정에서 원작과의 연결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연대기적인 차이를 강조한다. 그 차이의 강조를 통해 불러오는 것은 제목이 예시하듯 교본으로서의 파로키의 작품이며 미국에서 개봉된 적이 없었던 그의 영화의 대중적 접근을 강화하는 것이다. 즉, 이 작품은 파로키에 대한 존경이자 불분명한 배급 형태에 관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파로키의 작품이 60년대의 도덕적, 정치적 책임감과 노동사이의 논쟁을 촉발시켰다면,

이 작품은 더욱 글로벌화된 착취적 다국적 자본주의가 다시 불러일으키는 당대의 경제적 전환과 노동의 정치학을 촉발시킨다. 이러한 촉발은 논쟁적인 이슈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순하게 사그라질 수 있는 이슈들이 아니라는 것, 파로키의 제목처럼 ’꺼트릴 수 없는 불‘이라는 것을 파로키 영화에 대한 완전한 페티쉬를 통해 증명한다.

미국 아방가르드의 작은 신화 브루스 코너가 '레포트 Report(1967)'에서 정치적인 이미지를 끌어오는 것은 훨씬 압축된 차원이다. 케네디 암살의 결정적 장면은 결여되고 반복강박처럼 앞뒤의 이미지들이 혼란스럽게 반복되며 그 결여는 암전과 소란스러운 사운드로 대체되어 정치와 사회로부터 기인한 개인의 주체적 외상은 정치적 암살의 비극으로 전치된다.

정신분석학과 초현실주의가 개인의 '찢겨질 수 있는 것'이 사적인 영역에 남아 되돌아오는 억압들에 대한 생산적인 구제를 시도한다면, '레포트'의 이러한 사회/개인의 상호적 충격과 외상의 전치는 공적/사적 발화의 교환을 교란하면서 아방가르드가 생산할 수 있는 개입의 효과를 영화적 실천 안으로 되돌아오게 만든다.

그러나 결코 진술하지 않고, 각인과 충격의 맥락만을 몽타쥬하며 슬며시 사라져버리는 환유적 비극의 소멸은 상실과 공허의 세대에 대한 잔상을 더욱 압축시키고 있다.

사회적 맥락에 대한 성찰과 감각화의 작업을 더욱 압축적으로 전개하는 제임스 베닝의 '원 웨이 부기우기(1977)/ 27년 후(2005) '와 마이클 스노우의 '파장(1967) '은 공간을 스크린 안에 던져놓음으로써 되돌아온 것, 귀환된 것의 실체를 질문한다. '파장'은 이미 그 곳에 있었지만 처음부터 감지하지는 못하는 사진 한 장에 대한 주목으로 끝이 나는데, 시간과 사건들을 공간의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사진은 외부적 시간의 역사와 사건의 현재성에 대한 교환관계로 자리하게 되고, 어떤 연계성도 파악할 수 없는 혹은 절대적인 연계에 얽힌 내/외부에 던져진 환유적 맥락이 된다.

베닝의 '원 웨이 부기우기 27년후'는 1977년에 자신이 촬영했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샷을 반복하는 작품인데, 공간에 대한 제시로 구조를 끌고 가기 때문에 두 작품은 하나의 공간들에 관한 듀얼 프로젝션처럼 같지만 닮지 않은 기묘한 기시감들을 불러일으킨다. 푸코에 의하면 전통적인 재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것은 존재의 확인과 유사성, 즉 외적 유사성 또는 내적 유사성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에서 이 패러다임은 두 가지 방식에 의해 철저히 붕괴되는데, 이는 칸딘스키와 마그리트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칸딘스키의 추상은 플라톤적인 실재가 되어 실재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들고, 좀 더 흥미롭게도 마그리트는 유사성의 문제를 존재의 확인 문제에서 분리해내는데, 외적 유사성과 내적 유사성 모두 그대로 유지 되지만, 실재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실재 없이 탄생한 새로운 유사는 초현실주의의 변증법적 재치의 가치를 보여주는데, 베닝의 이중 공간은 그러한 재치에 주체의 문제와 그래서 역사를 연관 짓는 시도를 한 사람 중의 하나인 벤야민의 '축적'과 더 관계를 보일 것이다.

베닝이 고통스러울 만큼 긴 시간동안 허락하고 있는 공간의 이미지에 아우라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구식 물건 속에 들어 있는 친숙함과 닮아가는 것인데, 필연적으로 주체의 기억 축적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체를 세워주면서 동시에 대상을 제공해주는 기원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초현실주의가 이미 그 프로젝트의 불가능성을 천명했듯이, 베닝의 이중 공간은 실재 없는 유사들로 다시 던져지게 된다. 근래의 파운드 푸티지 작업들은 어떤 유사성을 기준으로 질료들을 모으고 또 모은다. 하나의 혹은 복수적인 기준을 중심으로 배열된 질료들은 물질적으로 축적을 감행하지만 탈각되는 것은 그 기준을 중심으로 한 의미들이다. 여러 가지 다른 언급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티스 뮐러나 마틴 아놀드, 리차드 커의 작업 같은 경우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앞서 언급된 벤야민은 일찍이, '나의 서재 공개'에서 '모름지기 열정이란 혼돈과 가까이 있는데, 수집가의 열정은 기억의 혼돈과 가까이 있다.'고 한 바 있다. 이들의 수집에 대한 열정은 대중문화의 외상 혹은 비판적 언급에 대한 강박적 혼란, 혹은 유희로써의 기준 재배열의 혼란과 관련 있어 보인다.

조금 더 교란적 스타일에 위치한 작품으로 에비게일 차일드Abigail Child의 연작 '이것이 당신이 태어난 이유입니까 Is This What You Were Born For?'는 필름 느와르적 세팅, 솝 오페라의 스릴러, 멕시코 만화에서 나온 액션 등을 혼합하여 사운드가 캐릭터를 창조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에비게일 차일드는 '이는 위험을 과도하게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욕망하는 것, 즉 두려워하는 것, 즉 그 욕망이라는 위험을 과도하게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운명을 프레임화하고, 그 순환을 보여주며, 진부함을 뒤엎고, 의식을 이용하여 우리의 모순들을 만족으로 바꾸기 위해서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그녀의 시도는 필름 느와르의 전체적 구성을 빌어와 사운드와 이미지의 실험적인 몽타쥬들을 통해, 반영적인 의미와 유머들을 만들어낸다. 느와르 영화의 서사, 앵글, 카메라 움직임, 음악, 인물 등 실제적인 모든 영화적 요소들의 관습적 사용에 대한 의문으로 전체적인 통일성을 교란하고 있는 이 영화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지적인 새로운 명확성을 만들어 낸다.

역사적인 파운드 푸티지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 켄 제이콥스는 “이것이 모두 쓰레기 같습니까? 단지 재능 있는 관객을 기다리는?" 이라는 언급으로 자신의 파운드 푸티지에 대한 반어적인 가치를 말한 바 있는데, 2006년에 만든 최근작 '뉴욕 게토 생선시장'에 이르러서는 질료에 대한 물신의 상태에 이르른다.

오래된 파운드 푸티지 필름들을 활용하는 켄 제이콥스의 다른 작업들처럼 이 작품 또한 토마스 에디슨의 1903년의 필름 ‘뉴욕 게토 생선 시장’을 재가공한 것이다. 뉴욕의 남동부로 추측되는 뉴욕의 유태인 게토지역은 당시 상업의 중심이었고 러시아, 유럽, 터키 등에서 온 수많은 이민자들로 들끓었던 곳이다. 난전, 행인, 상인, 위생 상태를 감시하는 검역관들 등이 얽혀있는 분주한 어시장의 풍경들은 켄 제이콥스 특유의 프레임의 깜빡임, 정지, 동작의 반복적 재생, 움직임의 강조 및 해학적 음악 등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그는 필름 내의 텍스쳐나 기호화 등의 작업보다 보는 행위자체에 관한 것이 본인 작업의 가장 큰 관심이자 도전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오래된 필름 안에 담긴 옛날 사람들이 본 사물의 배열들을 상상하는 깊은 시선 또는 유희적 시선을 창조하는 동기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조적 접근으로 필름의 물적 시간을 강조하는 그의 방법론은, 파운드 푸티지의 촬용으로 역사를 끌어오기도 하지만, 수집된 푸티지들에 대한 열정 그 자체로 물신화된다. 필름제작의 내적 방법론으로 과거의 시간에 대한 현재적 시간의 계속적인 개입을 통해 생성되는 그 물질적인 시간들은 죽은 것이 되살아나는 시간이자, 그 죽은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담긴 유령적인 시간에 대한 현재의 감각을 이미지로 밝혀내고 싶은 ‘시선의 상상적 욕망’이라는 가치가 전치된 하나의 페티쉬이다.

헝가리에서 꾸준하게 활동해온 페테르 포가치Peter FORGÁCS는 '비엔나의 여왕 1929 (2006)'이라는 최근작에서 오래된 홈 무비와 아마츄어 필름들을 파운드 푸티지로 활용하여 공식적인 역사에 개인적인 역사를 재배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1929년 최초의 미스 오스트리아이자 미스 유니버스가 되었던 리즐 골다바이터와 아마츄어 필름 메이커였던 그의 사촌 마르시 텐져를 20, 30년대 유럽의 풍경 속에서 찾아낸다. 뜻하지 않게 미스 유니버스가 되면서 대중적 명예와 부를 누릴 때,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으로 유태인의 홀로코스터를 겪게 되는 리즐 한 개인의 찬란한 성공과 시련들은, 그녀를 은밀히 사랑하였고 전쟁 후 결혼하게 되는 사촌 마르시가 평생에 걸쳐 담은 필름 다이어리 속에 담겨있다. 마르시 개인의 필름들을 파운드 푸티지로 활용하여 20세기 유럽의 시대적 격변과 중요 서사 속으로 기입되는 개인적 역사로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적 초상을 재구성하는 작가는 오래된 아마츄어 필름들이 삶과 역사에 대한 무의식적인 일기라는 것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이 작품은 표면적인 역사 이면에서 우리가 만질 수 없는 것 혹은 느낄 수 없는 것을, 20여 년간의 오랜 작업으로 숙련된 여유로운 감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새로운 하나의 역사기술학이자, 1929년 미스 유니버스 리즐을 은밀히 사랑하였던 또 한사람이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열렬한 고백의 시선이 된다.

역사에서 중요하게 기록하지 않는 개인의 아마츄어 필름을 활용하는 측면에서 훨씬 더 자유롭고 가벼운 실험 다큐멘타리의 형태를 따라가지만, 개인의 극적인 역사적 내러티브는 계속적인 동일화를 불러온다.

미술사가 할 포스터가 " 펠리서티 콜린Felicity Collins이 [스크린] 최근호에서 '정치적 영화는 물신주의자의 영화일 수 밖에 없다'고 간결하게 설명한 바 있는 그 말을 나는, 정치적 영화는 결국 자신이 타락한 것으로 지명했던 이미지를 통해서 동일화의 형식들을 배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 하는 흥미로운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의지적 물신화의 파운드 푸티지 작업들이 물질적 질료의 명확성을 그 자체로 물화하기 위해서 자신이 타락한 것으로 지명했던 물신화의 효과들을 위험스럽게 배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나도 해석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함축에는 동일화의 전략과 물신화의 전략이 반대급부와 대항이 되는 것이 아니며, 동종요법과 같은 영화적 장치들이 근래의 가치적 판단에서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음을 이미 목격하고 있다는 점도 포함되어 있다. -김연정

#파운드푸티지foundfoo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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